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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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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LETE

‘팬톡’의 첫번째 주인공 LG트윈스 직관룩 끝판왕 ‘김여정’

팬들의, 팬들에 의한, 팬들을 위한 시간
전국의 스포츠 덕후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ATHLETE ‘팬톡’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산업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스물일곱 살, LG트윈스 광팬, 박용택 팬, 김여정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Q 경기 직관 때 입는 스타일이 눈에 띄는데 소개 부탁드려요!

요즘 유행하는 스트릿 패션을 좋아하는데 야구장에서도 포기할 수 없어서 항상 스트릿 브랜드 제품들을 착용하고 많이 가고 LG트윈스 하면 생각나는 빨간색, 검정색! 그 색깔들을 포인트로 착용하고 있어요:)

Q LG트윈스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아빠 따라 야구장 갔다가 LG트윈스 응원가가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처음엔 응원가 때문에 따라 부르고 하다가 선수들한테 정이 가고…그중에도 박용택 선수한테 정이 가서 LG트윈스 팬이 되었어요.

Q ‘팬톡’에 참여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음.. LG트윈스를 좋아하다 보니까 이런 기회도 오고 너무 좋은 추억된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하고 너무 행복하네요.

Q ‘애슬릿미디어’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어.. 좋아하는 선수와 그 팬과의 만남을ㅎㅎ가지고 …‘팬톡’같이 이런 프로그램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애슬릿미디어의 새 코너 ‘팬톡’의 첫 번째 주인공

LG트윈스 덕후 ‘김여정’님의 인터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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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현대자동차그룹

ATHLETE

우리는 더러운 티켓으로 응원하기 싫다

2016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5개팀이 모두 결정되었다. 프로야구는 금년 800만관중을 돌파하면서 그 인기를 수치상으로도 증명한 상태이며 통칭 ‘엘롯기’라 불리는 리그 최고 인기팀에 속한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가 나란히 4,5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해당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매진이 되는 등 가을야구의 열기는 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그러나 프로야구가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만큼 이를 악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는 암표상도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있어선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번 가을도 어김없이 들리게 될 암표상들의 흥정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오는 것 같아 유감이다.

야구팬들에게 있어서 야구장은 놀이터이다. 신나게 놀다가는 곳이다. 특히 응원석 같이 인기가 많은 좌석은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린다. 티켓구매는 속도가 생명이어서 구매자간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하지만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는 법이다. 티켓을 끊지 못한 팬들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집에서 TV로 시청할 것인지,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경기를 관람할지 말이다. 후자를 선택할 경우 그들이 택하는 방법은 보통 현장구매이다. 미리 티켓을 구매했던 사람들이 예매를 취소할 경우 현장 구매창구에서 취소된 자리를 판매하지만 어느 정도 운이 따라줘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암표상들은 그들의 절실함을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암표 흥정에 나선다. 물론 이들은 정해진 가격보다 훨씬 높은 금액으로 티켓을 판매하며 매진되는 경기뿐만 아니라 좋은 좌석의 티켓으로 관람객들의 구매를 유도한다. 결국 팬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암표를 구매해 경기를 관람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암표상들의 이 같은 행위는 팬들의 야구사랑을 철저히 이용하는 아주 비열한 행위이다.

출처: 일간스포츠
출처: 일간스포츠

그렇다면 불법인지 알고도 왜 암표상은 줄어들지 않는 것일까? 긴 말할 것 없다. 처벌이 너무 가볍고 들키지만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암표거래는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되는 경범죄에 속한다. 티켓을 파는 암표상이나 구매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처벌받는다. 하지만 이는 현장에서 판매를 했을 경우에만 해당되고 온라인상에서의 거래는 현행법상 처벌을 받지 않는다. 즉 인터넷 경매사이트나 중고 거래 사이트에선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목적으로 티켓판매가 허용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암표를 거래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적발되지 않는다면 큰 상관이 없다. 

프로야구는 높은 인기만큼 매진사례도 많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경기장의 좌석이 관중들로 전부 채워졌던 것은 아니었다. 경기장 전광판엔 분명히 금일매진이라고 표시됐으나 실제로 경기장을 확인해보면 빈 좌석이 눈에 띄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 암표상들이 자리를 팔지 못해서 생기는 경우이다. 암표상들은 주로 티켓을 수령해서 판매하며 티켓 환불은 경기 시작 전에만 가능하다.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진 티켓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출처: 동아일보
출처: 동아일보

암표상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이유엔 부실한 암표단속도 한 몫을 한다. 암표상을 단속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을뿐더러 단속을 담당하는 경찰의 대응도 적극적이지 않고 순찰로만 끝나는 경우가 있다. 이 점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포스트시즌이나 주말경기 같은 빅매치의 경우엔 단속이 강화되지만 이에 상관없이 암표상들은 여기저기에서 팬들에게 표를 팔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경찰의 단속에 걸려 벌금을 물더라도 오히려 암표상들은 흑자를 보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이 일반 관람객은 물론 부모님의 손을 잡고 야구를 관람하러 온 어린 팬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질지 걱정이다. 

프로스포츠는 팬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목적이다. 비단 야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포츠경기도 마찬가지다. 암표거래는 순수한 팬들의 마음을 우롱하는 일이다. 야구티켓은 비교적 저렴해 암표를 어찌어찌 구매할 수는 있겠지만 축구대표팀 경기와 같이 빅이벤트인 경우는 안 그래도 비싼 티켓가격에 날개를 다는 격이 된다. 각본 없는 드라마로 감동을 주는 스포츠가 암표거래라는 추잡한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스포츠 관람 문화를 사랑하는 한 팬으로서 굉장히 슬픈 부분이다. 

1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LG KIA의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경기는 많은 야구팬들로 북새통을 이루겠지만 소문난 잔치엔 불청객도 오기 마련이다. 경기를 주관하는 해당 기관들은 암표거래가 근절되기만 멀리서나마 바랄 뿐인데 이는 너무 안이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암표상들을 퇴치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암표거래에 관한 법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이에 대해 안이한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본은 뿌리부터 뽑아야 한다.

/Writer Choo Eun Ch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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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와 팬 사이의 거리감 ‘팬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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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와 동네야구 사이 존재하는 가장 큰 차이는 뭘까’ 라는 질문에 답은 너무나도 많다.

경기장의 규모, 경기 수준 등 둘 사이가 극명하기 다르기 때문에 차이점은 무수하다. 그러나 그 차이를 만드는 단 하나의 근본적 답은 존재한다. 바로 ‘팬’이라는 존재다. 프로야구에는 동네야구와의 차이를 만드는 자본력과 프로라는 이름을 달 수 있게 해주는 팬들이 있다.

팬들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티켓 값을 지불하고,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고자 적지 않은 돈의 유니폼을 몇 벌이고 사곤 한다.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 미치는 영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비 수요자로서 그들을 바라보는 광고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구단에 큰 금액의 광고비를 안겨주기도 한다. 팬들이 지출하고, 팬들이 존재함으로서 벌어들이는 돈은 구단 운영에 들어가고 프로야구의 존재가 가능해 진다. 만약 팬들이 없다면 프로야구는 존재할 이유도, 가치도 사라져 버린 그저 야구만 조금 할 줄 아는 동네야구 집단이 되고 말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경우 한국처럼 모기업이 존재하는 구조가 아닌 구단이 자생하는 구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이 팬이란 존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팬 서비스를 위해 매 시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며 동분서주한다. 구단 측은 팬들에게 재미있는 즐거움을 선물하기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한 예로 지난 시즌 샌디에이고 파드레스가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펫코 파크를 9홀 골프장으로 깜짝 변신시킨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이벤트를 시작으로 프리 티셔츠나 버블헤드 증정 이벤트는 진행하지 않는 구단이 없을 정도로 메이저리그는 매해 팬들의 관심과 사랑에 보답하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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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튜브 영상 캡쳐

팬 서비스를 인식하고 있는 선수들의 태도도 성숙하다. 메이저리그의 팬이라면 한번쯤은 경기 시작 전 펜스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는 슈퍼스타들의 모습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선수들이 사인 요청에 대처하는 방법과 관련된 특별 교육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팬 서비스를 귀찮은 일이 아닌 프로로서 당연한 하나의 의무로 생각한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도 팬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근래 들어 미국과 같이 필수적 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추세이다. 일본 프로야구의 경우 팬 서비스와 관련해 사인 요청을 거절하면 벌금을 내야하는 등의 강제성 없이 선수 자주성에 맞기는 편이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선수들이 팬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된 글이 빠르게 퍼진 구조가 형성되었다. 예로, 한때 주니치 드래건스는 사인을 거의 하지 않아 팬 서비스가 짜고 냉담하여 ‘소금 반응’(塩対応 시오 타이오) 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최근 일본 구단들은 발 빠르게 팬 서비스에 대응하고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팬 서비스 부서가 따로 존재하며 특히 2군의 경우 무료 셔틀 버스 운행, 더그아웃까지 선수들을 마중 나가는 이벤트, 사인회 등 ‘G2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팬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에 팬 서비스 관련한 설문조사에 늘 상위 팀에 랭크된다. 라쿠텐의 경우 타치바나 요조 사장의 취임 이후, 선수 평가항목에 팬서비스가 포함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 일본프로야구는 1군에서의 팬 서비스를 넘어 지역 밀착화를 바탕으로 2군 팬 서비스 마케팅에 초점을 맞춰 2군 경기 관중 수도 늘려나가는 추세이다.

선수들의 의식 또한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성숙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선수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의 투수 ‘미우라 다이스케’를 꼽을 수 있다. 미우라는 팬들에게 일일이 사진도 찍어주고, 사인을 해주기로 유명하다. 특히나 숙소로 도착한 회신 봉투에 담긴 카드나 종이에는 꼭 사인해 반환한다고 한다. 그의 팬 서비스에 대한 자세를 볼 수 있는 한 일화로, 자신의 사인이 인터넷 경매에 올라 재판매가 되는 문제가 일어나자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타 선수들처럼 ‘불쾌하다, 이래서 사인을 해주고 싶지 않다.’ 라는 발언 대신 “가치가 없어질 만큼 팬들에게 사인을 많이 해주면 된다” 라고 말하는 유쾌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보다 8년 늦게 프로야구가 출범한 대만 프로야구도 다양한 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나 수 차례 반복된 승부조작 파문으로 팬들의 외면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신뢰 회복과 팬들의 발걸음을 야구장으로 돌리기 위해 구단별로 더욱 노력하고 있다. 대만 프로야구팀 라미고 몽키스는 경기 시작 전 어린이 팬들과 선수들이 함께하는 전통 사탕 만들기 체험, 승리 기념 투어 등을 다니면서 팬들과 교류하고 있으며 어린이 팬들을 위해 로보카 폴리, 헬로우 키티, 미니언즈 등 인기 캐릭터 등이 등장하는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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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자이언츠

그렇다면 한국 프로야구 속 팬 서비스는 오늘날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82년,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는 1000만 관중시대를 바라 볼 만큼 괄목할만한 외적 성장을 이루었다. 이제는 마치 락스타와 같이 열성적으로 팬들이 따라 붙는 스타 선수가 구단마다 존재하고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도 즐비하다. 구단들도 자신들의 고객인 팬들을 위해 쾌적하고 즐거운 관람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선수들이 의식하고 있는 팬 서비스의 개념은 외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다. 경기 시작 전 펜스를 사이에 두고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며 사인을 요청해도 대부분의 선수는 못 들은 척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스타 플레이어 일수록 사인 받기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 이며,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행복해 하며 많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던 신인 선수들도 유명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팬들을 외면하기도 한다. 이런 선수들의 행동에 익숙한 한국 야구팬들에게 지난 시즌 kt위즈에서 활약한 댄블랙의 행동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선수가 팬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자신의 배트를 선물하는 모습은 본 적 없는 장면이었다. 물론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들도 존재한다. LG 트윈스의 박용택이 그 예이다. 경기 후 자신을 기다리는 팬들에게 가능한 모두 사인을 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어줘 ‘사인택’이라는 별명도 있다. 그러나 포털 사이트에 프로야구 팬 서비스로 검색을 하면 팬 서비스가 좋지 않은 선수와 거절 에피소드가 뜨는 것이 한국 프로야구 팬 서비스의 현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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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LG트윈스

일본의 홈런왕 왕정치의 사인을 두고 일본 야구팬들은 그가 하도 팬들에게 사인을 많이 해줘서 ‘그의 사인은 가치가 없다’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 그는 사인을 가능한 거절하지 않는다. 만약 시간이 없었다고 해도 “죄송합니다. 다음번에는 좀 더 이른 시간에 기다려주시길 부탁 드립니다.”라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감동한 팬들도 많다. 홈런왕 왕정치가 사인왕이 된 이유는 자신도 프로 선수에게 사인을 거절당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웰네스 카나메라는 일본계 미국인 선수가 사인을 해주었던 고마운 기억 때문이라고 밝혔다. 어린 소년 왕정치가 프로 선수의 사인 하나로 훗날 훌륭한 선수가 된 것처럼 프로야구 선수들이 건 낸 사인은 단순한 종이 위 글씨가 아닌, 팬의 인생 추억이자, 앞으로 삶의 방향을 지시해주는 나침반이 되는 가능성도 품고 있다.

물론 승리야말로 최고의 팬 서비스라는 생각도 있지만 팬들에게는 역시 한 장의 사인이나 한 장의 사진이 일생의 보물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몇몇 유명한 선수들은 자신의 사인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거래되는 것에 불쾌감을 표시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인을 잘 안 해주게 된다는 말을 한다. 그런 선수들에게 기분 나빠하지 말고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와 미우라 다이스케의 말을 생각해 보라고 전해주고 싶다.

“가치가 없어질 만큼 팬들에게 사인을 많이 해주면 되잖아”

Writer Seo Jin 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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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LG트윈스 SNS

lg트윈스 SNS

[ATHLETE SNS STAR] 박용택의 2천안타 기념구 공개

꾸준함의 대명사 박용택이 드디어 2천안타의 고지를 넘었다. 이는 역대 6번째이다.

LG트윈스는 SNS를 통해 박용택의 기념비적인 2천안타의 야구공을 공개했다.

박용택은 전날 NC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3회말 11,3루 상황에서 적시타를 날려 통산 1999번째 안타를 기록했다.

팬들은 박용택의 2천안타를 기대했었고 7회말 4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쳐서 팬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LG역시 8연승을 이어가면서 가을야구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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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오지환 인스타그램)

오지환

[ATHLETE SNS STAR] 부상 회복 오지환, ‘1군 올라가지 말입니다!’

LG 트윈스의 주전 유격수 오지환이 부상을 딛고 1군에 등록된 소식을 자신의 SNS를 통해 전했다.

오지환은 지난 2 22일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도루를 시도하던 중 왼쪽 무릎에 통증을 느껴 귀국 후 약 7주 정도 재활치료와 훈련을 거듭해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1군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오지환은 최근에 유행 중인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유행어 군대식 말투를 사용해 ‘1군 올라가지 말입니다. 단결!’ 이라는 글과 함께 유니폼을 입은 사진을 게시했다.

이에 팬들은 기다렸지 말입니다’, ‘좋지 말입니다등의 센스 있는 댓글로 오지환의 복귀를 환영했다.

한편 2009년 LG트윈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오지환은 뛰어난 수비 범위와 감각적인 경기운영 센스로 트윈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유격수 1등 공신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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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라 2부 이병규, “일본에서 우승, LG가 마음 한편에 남더라”

EditorJeong Seong Hoon  PhotographerPark Min Ji  DesignerLee Min Seo

올해로 딱 20년째다. 이병규가 프로 무대에서 강산이 두 번 변하도록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 말이다. (물론 중간 3년은 일본산 파란색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산전수전 다 겪고 공중전까지 겪었던 그에게 이번 겨울은 유독 쓰라리다. 2년간 팬들에게 들었던 애정이 어린 투정들이 가슴에 사무쳤다. 아픈 몸이 문제였던 탓에 그는 다시 아프지 않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태어나 처음 해본 수영이 그 예다. 겨우 숨쉬기가 가능해진 자유형으로 물속에서만 키울 수 있는 근력을 키우고 있단다. 이쯤 되면 그에게 올 시즌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꼭 이룰 수 있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고.

이어서…

1997년 프로데뷔 후 앞만 보고 내달렸던 ‘적토마’는 2007년 FA 자격을 취득한다. 그의 행선지는 일본이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왜 일본이었을까? 국내 무대를 호령하던 ‘적토마’의 능력이 거기까지였을까? 물음의 대답은 당시 상황이 말해준다.

요즘이야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선수가 많아졌다만, 당시에는 최근과 같은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와 국내 리그의 간극 사이에는 일본리그가 자리 잡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병규가 회상하는 당시 상황에서 ‘빅리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벽이 그를 가로막고 있었고, 그렇게 선택한 곳은 일본의 주니치 드래건스였다. 선동렬, 이종범, 이상훈 등 국내 선수와의 인연이 깊었던 구단이었다. 그리고 이병규는 그곳에서 팀의 재팬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는 선수가 되었다.

“야구하면서 처음 해본 우승이었어요. 단국대 시절 전국체전에서 우승해본 적은 있는데 큰 대회 우승은 처음이었거든요.”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맛본 첫 우승. 이병규에게 재팬시리즈 우승은 단순한 기쁨보다는 가슴 한편의 먹먹함이었다.

“첫 우승을 경험하면서 ‘와, 이런 게 우승이구나’, ‘이래서 우승을 하려는구나’를 느꼈죠. 정말 기쁘긴 했는데, 마음 한편에 LG가 남더라고요. 이렇게 기분 좋은 우승을 내가 좋아했던 LG 트윈스 선수들과 한국에서 했으면 더 기뻤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있잖아요. 그게 가슴 한쪽 구석에 있어서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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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병규는 LG 트윈스의 주축 선수이자 LG 트윈스를 가장 사랑하는 남자였다. 2010년 LG로 복귀한 이병규는 그렇게 자신을 위해, 그리고 팀을 위해 그라운드를 뛰어다녔다. 팀에서 보낸 수년의 세월, 분명 그 속에 희로애락이 담겨 있을 것이다. 기억력이란 것이 상기하면 상기할수록 닳는 법이지만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추억은 닳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요? 처음인 것 같아요. 1997년 신인왕을 받고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했거든요. 선수 생에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신인왕에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처음 경험해봤죠. 그해는 계속 제 머릿속에 남아있어요. 아 그리고 2013년 10월 5일도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제가 야구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한 포인트예요.

2013년 시즌 초반 부상이어서 5월에 팀에 합류했는데 그때부터 좋은 흐름을 이어갔고, 시즌 마지막 날인 10월 5일에 우리가 2위를 확정 지었죠. 팀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타격왕 타이틀이 걸려있었는데 8회 안타를 만들어내면서 팀의 역전과 타격왕 타이틀이 동시에 따라왔어요. 당시 가을 야구를 짧게 해서 팬들께 죄송하단 말씀을 드려야겠지만, 2013년은 제 기억 속에서 잊을 수 없는 한 해였습니다.”

그가 LG를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팬들도 그를 사랑한다. 이병규가 타석에 등장을 할 때면 어김없이 Queen의 ‘I was born to love you’가 잠실야구장에 울려 퍼진다. 음악에 맞춰 팬들은 이병규란 세 글자를 목청껏 외치며 화답한다. 특히, 그가 대타로 타석에 등장할 때 그 웅장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야구장의 열기와 함성을 10점 만점의 수치로 환산한다 해도 9.9는 충분히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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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팬들에게도 아쉬운 부분은 있어 보인다. 그가 야구장에서 뛰는 모습이 라면을 사러 가는 것처럼 설렁설렁 뛰어간다고 해 급기야는 ‘라(면)뱅(규)’이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적토마’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던 그에게 ‘라뱅’은 꽤 충격적인 별명이었다.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고,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죠. 제가 뛰어다니는 모습이 빨리 뛰어다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경기장에서 대충 뛰어다닌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라뱅’은 제가 좋아하는 별명은 아니에요. 저는 ‘적토마’이고 싶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 부정하고 싶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이병규도 실감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얼마 전 LG 트윈스 스프링캠프 명단에 그의 이름이 빠졌다. 이병규는 애리조나 전지훈련 대신 2군 선수들과 대만으로 향한다. LG의 상징적인 인물 이병규가 명단에 없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구단이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최근 부진했던 이병규에게 공평한 잣대를 들이밀었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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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3할을 칠 것이라는 기대감을 이제는 이병규 스스로가 증명해야 할 차례이다. 자신에 대한 대우가 예전만큼은 아니라는 것은 그가 몸으로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FA 계약의 마지막 해. 그에게 올 시즌은 무엇보다 중요한 해다.

‘은퇴해라’, ‘이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줘라’, ‘박수칠 때 떠나라’ 등. 최근 이병규는 유독 가슴 시린 팬들의 반응을 마주하게 된다. 한국 나이로 올해 43세의 이병규, 불혹을 넘기고도 남을 나이에 아직까지 배트를 휘두르고 있는 그가 어찌 보면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가 아직 그라운드를 떠날 수 없는 이유? 그건 아직 보여줄 게 남아서일 것이다. 이병규의 야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한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그 누구도 이병규가 쓸쓸히 유니폼을 벗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당당하게 그라운드에서 강인한 모습으로 그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이룰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마지막은 이병규가 20년간 함께 뛰어온 본인에게 남긴 메시지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말하기는 좀 그런데…. 제가 병규한테 (메시지를 보낸다면) 병규는 지금까지 정말 고생 많이 했고 열심히 했는데 마지막을 예쁘게 해서 잘 끝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동안 뛰어다니느라 고생 많이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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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LETE

야구라 ‘살아있는 전설’ LG 이병규의 20년

EditorJeong Seong Hoon  PhotographerPark Min Ji  DesignerLee Min Seo

올해로 딱 20년째다. 이병규가 프로 무대에서 강산이 두 번 변하도록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 말이다. (물론 중간 3년은 일본산 파란색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산전수전 다 겪고 공중전까지 겪었던 그에게 이번 겨울은 유독 쓰라리다. 2년간 팬들에게 들었던 애정이 어린 투정들이 가슴에 사무쳤다. 아픈 몸이 문제였던 탓에 그는 다시 아프지 않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태어나 처음 해본 수영이 그 예다. 겨우 숨쉬기가 가능해진 자유형으로 물속에서만 키울 수 있는 근력을 키우고 있단다. 이쯤 되면 그에게 올 시즌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려한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꼭 이룰 수 있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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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왕, 통산 골든글러브 7회(1997, 2000, 2001, 2004, 2005, 2013) 수상, 1999년 잠실야구장 유일에 30-30클럽 보유, 2013년 최고령 타격왕, 국내 최고령 사이클링히트 기록 보유 등. 수많은 기록을 써내려온 KBO리그 최고의 타자. 더는 어떤 수식어가 불필요한 이 선수는 ‘이병규’란 이름 세 글자만으로 자신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

‘강성철의 야구라’ 신년 첫 주인공은 LG 트윈스 이병규다. 감히 신년특집이라 할만하다. 왜냐하면, 그는 인터뷰 섭외 0순위 물망에 항상 올라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반대로 섭외하기 어려운 인터뷰이 0순위이기도 한 아이러니한 양면을 지니고 있다. 어차피 하기 어려운 ‘이병규 섭외 프로젝트’를 밑져야 본전이라는 배짱 가득한 도전 정신으로 정중히 구단과 선수 본인에게 요청했다. 그의 발걸음을 애슬릿미디어 스튜디오로 향하게 하는 결정적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LG 트윈스의 수많은 팬분이 당신을 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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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와 팬의 연이 얼마나 끈끈하기에 수없이 고민하던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그것은 미안함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병규는 거의 두 시즌을 재활에만 몰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팀이 궁지로 몰리는 상황을 먼발치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이 모든 상황은 일부 비난의 화살이 그에게 돌아가게끔 했다. 그들을 위한 이병규의 선택은 자신의 모습을 비치는 것이었다.

이병규는 촬영 시작에 앞서 “후회가 밀려온다”라며 걱정을 늘어놓고 있었다. 혹시 자신의 발언이 문제를 만들지 않을까 싶은 염려 때문이었다. 이런 모습을 이병규에게서 보다니! 팬들의 힘은 위대했다.

사실 그는 그라운드에서 내뿜는 카리스마가 워낙 강력한 선수다. 자신의 루틴을 깨지 않고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줄곧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고수해왔다.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왜 그렇게 치열하게 야구에 몰두해야만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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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타임라인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세대 아이돌 그룹 H.O.T가 가요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을 때, 이병규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인선수로 프로야구계를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그는 1997년 4월 12일 전주 쌍방울과의 데뷔전부터 그해에 일어난 믿지 못할 일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똑같은 야구라고 생각하고 접근했어요. 물론 프로야구로 환경이 달라졌지만, 경기는 계속 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떨리던 부분은 없었죠. 그저 새로운 분야에서 하는 도전이 즐거웠죠. 당시 입단한 동기들이 좋은 선수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첫 번째 목표를 주전으로 잡았고, 두 번째는 신인왕으로 설정했죠. 주전을 해야 신인왕을 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

이병규는 데뷔 시즌 신인왕을 거머쥐며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병규도 신인왕을 받은 선수가 겪는 2년차 징크스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물론 자신이 2년차 징크스라고 표현한 것이지만) 사실 2년차 징크스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신인왕을 받았던 데뷔 시즌 (타율 0.305, 7홈런, 69타점)보다 살짝 내려간 1998년의 성적(타율 0.279, 9홈런, 67타점)을 이병규는 2년차 징크스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가 말한 힘든 시기를 거쳐 1999년 드디어 본격적인 적토마의 행보를 걷게 되는데 여기엔 그가 밝히는 비결이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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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차에 돌입하면서 30-30 클럽에 가입하고 저도 제 활약에 놀랄 정도였어요. 제가 2년차 때 몸이 안 좋았는데 좋은 기회에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죠. 당시 그 해가 끝나면 군에 입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병역을 해결하면서 마음의 짐을 좀 덜게 됐죠. 이제 난 운동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해 겨울부터 더 많은 노력을 했어요. 트레이너와 함께 웨이트 트레이닝도 체계적으로 시작했고 많은 성장을 했죠. 몸도 성장하고 정신도 성장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당시 그의 모습을 보고 김성근 감독은 “백인천 선수 이후 4할 타자가 나온다면 그건 이병규일 것이다”라는 극찬을 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 이야기에 손사래를 쳤다.

“굉장히 감사하죠. 그런데 제가 아시다시피 스트라이크만 치는 타자가 아니어서 스스로 알고 있었죠. 0.350만 쳐도 정말 잘 치는 타자라고 생각을 했어요. 제 스타일은 4할을 도전할 타자가 아니었죠. 저는 1년마다 목표를 하나씩 정하거든요. 거기에 4할은 목표에 한 번도 없었죠. 오히려 저 자신에게 물어봤을 때 ‘최다안타’를 목표를 잡았죠. 한국프로야구에서 안타를 가장 많이 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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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는 소위 잘나가는 선수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 스타로 등극하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을 오해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오해를 ‘부담’이라 설명했다.

“선수가 어느 정도 탑클래스에 올라서면 그걸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한다는 걸 모르실 수도 있어요. 정상에 올라갔다고 해도 그 선수가 영원하진 않거든요. 올라가면 내려가야 하는 게 순리잖아요. 최대한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하거든요. 스타급 선수들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더 많은 연습량과 더 많은 훈련을 해야 하죠. 그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알고 있죠.”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런 부담감을 그는 20년 동안 지니고 유니폼을 갈아입어 왔다. ‘야구는 잘하는 선수가 잘한다’고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은 이병규에게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누구보다도 쉽게 쳐내던 안타를 만들기 위해 그는 수없는 고통을 반복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천재 타자’ 이병규는 부단한 노력 속에서 만들어진 노력형 선수였던 것이다.

“제가 노력을 안 하는 줄 알고 계실 텐데, 저는 남 앞에서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뒤에 숨어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죠.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뒤에 가서 더 많이 하는 스타일이죠. 저는 노력형 선수라고 생각해요. 정말 야구가 안 될 때는 이럴 때도 있어요. 제가 전실 거울을 앞에 두고 스윙하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정말 안 좋을 때는 이런 이야기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발가벗고 스윙을 해요. 거울 앞에서 아무것도 안 입고. 그럼 제 라인을 확인할 수 있는데, 완전 탈의를 하면 스윙 궤도와 몸이 회전하는 걸 볼 수 있죠.”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엄격한 모습을 보여준 노력은 그라운드에서 고스란히 드러났고, 이병규는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LG 트윈스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전성기의 서막, 그리고 적토마의 거침없는 질주! 그의 다음 행선지는 일본이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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