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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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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LETE

스켈레톤 윤성빈, 선구자를 넘어 세계 최고를 향한 폭풍 질주

Director Jeong Seong Hoon   Editor Choo Eun Cheol

Photographer Park Min Ji   Designer Lee Min Seo   Location DoubleH MultiGym

각각의 고유색을 가진 운동들을 한묶음으로 종합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장소와 때,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 목적과 활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 근간은 폭발력의 원천인 Power, 민첩함과 순발력으로 대표되는 Speed, 신체의 가동성을 이끄는 Mobility로 크게 정의 내릴 수 있다. 애슬릿미디어는 각기 다른 포커스에 맞춘 ‘나를 넘어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다 효과적인 Power-Speed-Mobility 향상의 운동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매달 당신을 찾아갈 이 이야기의 말미에는 반드시 당신도 ‘나 자신을 넘어섰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속도와 공포는 서로 비례하는 사이이다. 자동차에 탑승하고 있을 때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빠른 속도로 달릴수록 크게 공포감을 느낀다. 허나 애석하게도 이러한 공포를 극복하는 종목이 바로 스켈레톤이다. 스켈레톤은 1,200미터가 넘는 빙판 트랙을 엎드린 자세에서 썰매를 타고 질주하는 동계스포츠로 평균 시속이 약 120km/h에 달할 정도로 스릴이 넘치는 종목이다. 이에 더해 스켈레톤은 별도의 제어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그 공포는 썰매를 타는 선수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대한민국은 2018년 강원도 평창군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선수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지원했다. 그 결과 비교적 생소했던 동계스포츠 종목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스타들도 하나둘씩 배출됐다. 스켈레톤 역시 국내에선 알 만한 사람들만 알고있던 종목이었다. 대한민국 스켈레톤 국가대표인 윤성빈이 나오기 전까진 말이다. 윤성빈은 연일 스켈레톤 관련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세계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한평생 스켈레톤에 매진했던 엘리트 선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윤성빈은 체육대학교를 준비하는 입시생이었으니 말이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저희 학교 체육선생님으로 계셨던 선생님이 스켈레톤 종목과 관련된 일(서울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이사)을 하고 계셨어요. 그 선생님께서 저를 주의 깊게 보셨었고 저에게 스켈레톤을 추천 해주셨어요. 그렇게 스켈레톤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성장세는 비약적으로 빨랐다. 윤성빈은 운동을 시작한지 3개월 만에 대한민국 스켈레톤 국가대표가 되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스켈레톤은 불모지였다. 그리고 자신의 첫 번째 올림픽이었던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종목에서 16위를 차지, 대한민국 썰매 종목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15-2016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7차 대회에서 그는 대한민국 스켈레톤 선수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2016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세계랭킹 2위로 지난 시즌을 마감했다. 바야흐로 세계적인 스켈레톤 선수가 나타난 것이다.

“아무래도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이 제 성격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저는 좀 단순한 성격이어서 여러 잡생각이 많이 없는 편인데 스켈레톤은 멘탈이 정말 중요한 종목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경주를 할 때 시너지가 좋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오늘날 윤성빈의 위상은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높아진 위상만큼 평창에서 윤성빈에게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상당히 크다. 그렇기에 올시즌 마지막 스켈레톤 대회였던 IBSF 월드컵 8차대회는 윤성빈에게 특히 더 아쉬웠다. IBSF 월드컵 8차대회는 내년에 있을 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경기장으로 사용될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에서 열린 대회로 쉽게 말해 올림픽 리허설 무대였다. 이 대회에 출전한 윤성빈은 시계의 눈금보다 짧은 0.01초에 발목을 잡혔다. 윤성빈과 함께 8차대회에서 1등을 경쟁했던 스켈레톤의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가 합계 1분 41초 51로 금메달을 획득했고 윤성빈은 이에 0.01초가 모자란 1분 41초 52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1초의 1/100 밖에 되지 않는 눈 깜짝할 사이에 1등과 2등이 나뉜 것이다. 

“저의 선수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있다면 좋은 쪽으로는 처음으로 1위를 했었을 때였고 아쉬웠었던 경주는 지난 3월 평창에서 열렸던 IBSF 월드컵 8차대회예요. 0.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쳐서 많이 아쉽기도 했지만 어찌됐든 제가 준비했던 경주의 결과이기에 받아들여야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올림픽이기 때문에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일단 대회가 끝나고 제가 어떤 것이 부족하고 또 어떻게 하면 좋은 성적을 내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았기 때문에 여름 훈련을 통해서 내년에는 좋은 성적으로 보답을 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록을 다투는 스포츠가 그렇듯 스켈레톤 역시 가장 필요한 요소는 단연 스피드이다. 1/1000초에 희비가 교차될 수 있는 종목이 스켈레톤이다. 윤성빈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경험까지 겪어봤다. 그는 스켈레톤에서 필요한 스피드를 키우는 자신 만의 운동법을 소개해주었다.

“스타트는 스켈레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는 것이 중요한데 저는 빠른 스타트를 끊기 위해서 하체 운동을 가장 많이 하고 있어요. 첫 번째로는 제자리 피치(무릎 높여 제자리 달리기)입니다. 방법은 간단한데요. 제자리에서 양발과 팔을 크게 흔들어주고 교차시키면서 뛰면 되는데 여기서 무릎은 골반 높이까지 올려줍니다. 이 동작을 20회에서 30회 정도 3~5세트를 하고 있습니다. 스피드가 늘어나는데 있어서 정말 큰 도움이 되는 운동입니다.”

스피드를 높이기 위한 윤성빈의 선택은 제자리 피치라는 맨몸운동이었다. 맨몸운동은 별다른 운동기구가 불필요하고 외적인 요인에 상관없이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운동이다. 필자가 윤성빈을 처음 봤을 때 그의 탄탄한 몸에 압도를 당했는데 특히 당장이라도 트랙을 질주할 것 같은 허벅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윤성빈이 하체의 힘을 기르는 이유가 바로 스타트에서 빠르게 달려가기 위함이었다.

“다음으로 소개해 드릴 운동은 제자리 점프(앉았다 일어나며 점프하기)입니다. 제자리 점프 같은 경우에는 무릎을 충분히 구부려서 발로 바닥을 민다는 생각으로 쭉 뛰어오르면 되는 운동입니다. 이 운동을 하게 되면 허벅지에 정말 큰 부화가 오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으시다면 아마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제자리 점프는 10~15회씩 3~5세트를 반복하면서 훈련하고 있습니다. 여름에 같은 경우는 저희가 할 수 있는 훈련이 한정적이에요. 요즘은 이렇게 스타트를 중점으로 하는 훈련들과 육상, 웨이트 위주의 훈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윤성빈의 가장 큰 경쟁자는 누구일까? 두말할 것 없이 두쿠르스이다. 2009-2010시즌부터 쭉 세계랭킹 1위를 고수한 그는 현재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선수이다. 두쿠르스는 명실상부 스켈레톤 1인자이지만 아직 그에겐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타이틀이 없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정상의 자리에 도전을 했었으나 모두 홈 트랙 선수들(2010년 캐나다의 존 몽고메리, 2014년 러사이의 알렉산드르 트레티야코프)에게 금메달을 내주면서 2회 연속 은메달에 그쳤다. 징크스 아닌 징크스라고 하더라도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윤성빈에게 금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두쿠르스 선수가 올림픽에서 2번이나 금메달을 놓쳐서 이 점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을까 생각을 가지고 있긴 해요. 하지만 그런 외적인 요인들 보다는 저는 그냥 제가 노력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와 경쟁할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모두 세계적인 선수들이고 게다가 그 선수들은 저보다 경력 면에서도 앞서고 있고 무엇보다 경험이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대처하려면 빠른 스타트 라든지 주행하는 기술을 좀더 보완해야 될 것 같아요.”

윤성빈은 모든 국민들의 염원을 받는 국가대표 선수지만 그의 나이는 아직 20대 중반이다. 보통 이 나이대가 되면 하고싶을 것도 많을 텐데 윤성빈은 시종일관 운동에만 관심이 있었다.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찾고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하기 바빴다.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한 것은 이런 끊임없는 노력에서 비롯됐다.

“사실 제가 운동을 하다 보면 취미 생활을 가질 시간이 많이 없어요. 그래도 여유가 있다면 주로 농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평소에도 농구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가 제 또래들 보다 여유는 많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남들보다 좀더 목표를 빨리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점인 것 같아요.” 

2018년 2월 9일. 겨울스포츠 최대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이 강원도 평창에서 개막한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2002년 대한민국/일본 FIFA 월드컵,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권대회 이후 국내에서 열리는 스포츠 빅 이벤트이다. 자국에서 열리는 만큼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도 어느 때보다 크다. 윤성빈 역시 포커스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스켈레톤 선수 최초의 금메달에 맞춰져 있다.

“스켈레톤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떤 종목인지 전혀 몰랐었던 분들이 많았던 종목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알아주시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주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저에게 향한 관심을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결과로 꼭 보답해드리고 싶어요. 평창에 오셔서 많이 응원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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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LETE

ATHLETE’s Winter Story
Passion. Connected. #3 우리 신나게 놀아볼까요?, 스노보드 이광기의 열정

Director Jeong Seong Hoon Editor Kim Ji Won 

Photographer Park Min Ji Designer Lee Min Seo

인구 약 5만여 명의 소도시 평창을 향한 시선들이 각양각색의 기대감으로 차오르고 있다. 시선의 시작은 올림픽을 그리는 아득한 호기심이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물음표는 점점 구체화되었고 이는 어느새 손에 잡힐 듯 목전에 다가온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국 스포츠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시간도 머지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수많은 시선들 중 가장 또렷하고 분명한 눈빛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선수생활 중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경험할 수 있는 극소수 중 한 명, 나아가 역사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새기기 위한 그들의 행보는 음울할 정도로 고독하나 온전히 아름답기 그지없다. 애슬릿미디어는 ‘Passion. Connected.’를 통해 가장 차가운 곳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을 맞이할 그들의 올림픽 열정을 독자들과 나누려 한다. <편집자 주>

Player. Connected. : 변방에서 외칠 즐거운 이야기

2지금은 대표적인 겨울 레저스포츠로 손꼽히는 스노보드지만 역사의 시작은 눈 덮인 산악 지대를 수월하게 통과하기 위한 이동 수단에 불과했다. 함께 거론되곤 하는 스키에 비해 시기 자체도 굉장히 늦어 1950년대에 들어와서야 고안이 된 것도 눈에 띈다. 그러나 현대적인 형태로의 발전 속도는 어떤 종목보다도 빨랐다. 보통 다수의 종목들이 장비의 개발로 불편함을 보완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스포츠로서의 영역을 확고히 갖추어 나가는데 스노보드는 이를 단시간 내에 이룬 경우라 할 수 있다. 보드에 가죽 형태로 된 끈을 단 이후 나무를 이용해 보드를 제작했으며 결국 처음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지 20여 년만인 1976년 북미 스노보드 협회가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필자가 지금 쓰고 있는 ‘스노보드’라는 명칭도 이때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3종목의 성장 속도는 멈출 줄을 몰랐다. 협회 발족 이후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 스노보드는 대중화에 성공하며 스키인구 못지않은 많은 사람들이 즐길 정도로 급속한 보급을 이루어냈다. 협회가 생긴 지 20년 만에 올림픽(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렇듯 엄청났던 세계적 스노보드 대중화 열풍을 한국도 지나칠 순 없었다. 80년대부터 한국 스키장에서도 소소하게 스노보드를 즐기는 풍경을 볼 수 있었고, 한국의 ‘프로’ 스노보더들이 활동할 수 있는 튼튼한 뿌리가 마련되기 시작했다.4그러나 한국 스노보드는 빙상을 제외한 대부분의 종목이 그렇듯 올림픽 무대에서 철저히 변방에 머물렀다. 메달은 커녕 아직 결선 진출의 벽도 높아 보이기만 하다. 다만 몇몇 선수가 월드컵에서 결선 진출 및 상위권 입상을 차지하며 올림픽 전망을 밝게 하는 정도로 위안을 삼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상적인 방향이다. 처음부터 올림픽 무대를 정복하길 원했다면 그것은 욕심일 것이며 전후맥락없는 속 빈 스토리일 뿐이다. 이제 이 정상적인 이야기를 즐겁게 써나가고 있는 선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가능하다면 이 선수의 신나는 스노보드 이야기는 반드시 해피엔딩이었으면 한다.5

Possibility. Connected. : 스노보드보다 즐거운 건 없었다
그간 우리와는 큰 인연이 없었지만 스노보드는 사실 평행대회전, 스노보드 크로스, 빅에어, 슬로프스타일, 하프파이프 등 5개 세부종목이 남녀로 나뉘어 총 10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는 메달밭이다. 이중 아찔한 곡예와 화려한 예술성을 동시에 선보이는 하프파이프는 마니아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그리고 이제 한국 팬들은 이광기라는 새로운 인적 요소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할 듯 보인다.6“언제부터 보드를 탔는지는 기억도 안나요.(웃음)”
스노보드를 처음 시작한 시기를 묻자 이광기는 멋쩍은 듯 대답했다. 기억에 없던 시절, 그만큼 어린 나이에 고사리같은 손으로 보드를 잡았다는 뜻이다. 취미를 지나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9살 때 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눈밭을 가른지 20년이 가까워져 오는 베테랑이다.

그런 이광기의 출발에는 현재까지도 국내 스노보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아마추어 고수, 아버지 이태식 씨의 존재가 있었다. 그는 어린 이광기에게 스키장이란 놀이터와 스노보드라는 장난감을 소개해주며 아들과 같은 호흡을 내뱉었다. 때로는 함께, 때로는 경쟁하는 아버지와의 시간이 늘어갈수록 아들 이광기는 신나고 즐겁게 스노보드를 타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그냥 그렇게 즐겼을 뿐인데 어느새 그는 유망주, 기대주와 같은 수식어로 소개되곤 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재능과 뒤늦게 발견한 승부욕이 긍정적 화학 작용을 일으켰으리라. 강원체중·강원체고를 거치며 ‘오늘은 더 재미있게 타야지’라는 목표를 하루하루 되새기자 그는 명실상부 국내 스노보드 최강자로 거듭났다.7

8“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대회 우승, 국가대표 이런 것들이 목표가 아니었어요. 막연히 스노보드가 재미있었고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기 때문에 계속 스키장에 나갔던 거예요. 그런데 어떤 대회에서 다른 선수에게 지고 난 이후 제 안에 있던 ‘승부욕’이란 감정을 느끼게 됐어요. 기분 좋은 발견이었죠. 그 이후부턴 즐기는 자세는 유지하되 조금 더 진지한 태도로 스노보드를 바라보게 됐어요. 그렇게 제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PyeongChang. Connected. : 이제는 보여줄 때

9다수의 국내대회를 제패하고 세계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이광기는 2014년 1월 캐나다 월드컵에서 7위를 기록하며 자신의 힘으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진출 티켓을 따냈다. 운동선수로서 최고의 영광이자 최후의 목표인 올림픽 무대 첫 출전을 앞두고 그는 “긴장되거나 떨리지 않는다. 오히려 올림픽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당찬 각오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정말일까? 과연 그의 올림픽 첫 여정은 어땠을까.

10“확실히 즐거웠죠. 경기 당일이 되기 전까지는(웃음). 사실 러시아 도착했을 때만 해도 실감이 하나도 안났어요. 당시 김수철 코치님께도 ‘세계 선수권때보다 안떨린다’, ‘동네 시합 뛰러 온 느낌이다’라고 말씀드릴 정도로요. 그런데 경기 당일이 되고 경기장에 입장하면서부터 미치겠더라고요. 페이스 조절 자체가 하나도 안됐어요. 올림픽이라는 무대가 크게 와닿지 않다가 한번에 확 오니까 그 긴장감이 더 엄청났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왜 올림픽, 올림픽 하는지 그때야 알게 됐죠”

11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이광기가 거둔 성적은 출전선수 40명 중 20위. 첫 출전에 만족스러울 법도 한 성적이지만 이광기는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고 한다. 그때부터였다. 다음 올림픽까지 4년이 남았음에도 이광기의 심장은 바삐 움직였다. 빠르게 마음을 다잡았고 다음 목표를 설계했다. 고난도 기술을 완벽하게 습득하기 위해 강도 높고 아찔한 기술 훈련을 자처했고 이제 작은 부상 정도는 일상다반사가 됐다.

12그러나 그는 이를 ‘영광의 상처’라고 표현한다. 이 훈장들이 늘어갈수록 세계레벨에서 이광기가 가지는 경쟁력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세계선수권 하프파이프부분 결선, 세계 톱랭커들만 출전할 수 있는 마운틴 듀 투어에 초청받은 최초의 한국인도 모두 멋진 훈장을 단 이광기였다. 어떠한 부상에도 다시 하프파이프 경기장으로 향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 그는 모든 답이 스노보드가 가진 매력에 있다고 말했다.

13“도전. 스노보드는 도전이에요. 기술을 성공시키기 위해 넘어지는 시간은 힘들 때가 많지만 성공했을 때 기분은 말로 다 할 수 없죠. 성취감과 희열 등 복합적인 기분인데 그 매력 때문에 부상을 당해도 스노보드 타는 시간이 기다려져요”

이제 일 년 앞으로 다가온 2018 평창 올림픽을 준비해야 될 시기.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을 목전에 둔 이광기는 소치 때보다 말을 아꼈다.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기에 보다 더 큰 사명감과 무게감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자신이 평창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경쟁력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당당한 어조로 대답했다.

14“2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상위권 선수들에게는 견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기술적인 부분에서 스스로 느끼기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따라왔구나’, ‘내가 저들을 잡을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경기 당일 컨디션 조절을 잘하고 외국 선수들과의 높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훈련을 열심히 한다면 팬들에게 놀라운 결과를 선물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15스노보드를 장난감 삼아 눈밭을 구르던 어린아이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큰 놀이터로 향한다. 경험은 충분히 쌓였고 경쟁력도 갖췄다. 남은 것은 이 무대를 즐기는 것뿐. 만약 이광기가 유년 시절처럼 이곳을 놀이터 삼아 즐거운 경기를 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일년 뒤, 한국 최초의 올림픽 스노보드 메달리스트가 탄생하는 시간을 함께 할지도 모를 일이다.

“소치 때 한번 즐겨봤잖아요. 물론 경기 전까지지만.(웃음) 그런데 이제는 국민들께 무언가 보여드려야 될 때라고 생각해요. 잘하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즐겁게 응원해주세요. 즐겁게 경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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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평창동계올림픽 이광기 선수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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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PA/HOW HWEE YOUNG

epa04091872 (L-R) Silver medalist Kim Yuna of South Korea, gold medalist Adelina Sotnikova of Russia and bronze medalist Carolina Kostner of Italy celebrate after the Women's Free Skating Figure Skating event at Iceberg Skating Palace during the Sochi 2014 Olympic Games, Sochi, Russia, 20 February 2014.  EPA/HOW HWEE YOUNG

[ATHLETE 해외토픽] 김연아, 도둑맞은 금메달 되찾을까

러시아가 자국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의 조직적 도핑 의혹에 휩싸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4일(한국시간)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러시아 선수들 27명의 도핑 의혹을 조사중이다”라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언론들 또한 “현재 IOC가 조사 중인 러시아 선수들이 누군지는 공개 되지 않았지만 최소 금메달 4개가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특히 당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2연속 금메달을 놓친 김연아가 금메달을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최근 해외 언론을 통해 유출된 ‘소변 샘플 바꿔치기 명단’ 중 소치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을 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의 이름도 있어 김연아가 다시 금메달을 찾을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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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지, 상징으로 살아간다는 것

Director Jeong Seong Hoon   Editor Kim Ji Won  Photographer Park Min Ji   Designer Lee Min Seo

제 97회 전국체육대회가 열렸던 충남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하염없이 올라간 크로스 바(Bar)의 높이는 어느새 4m 20cm를 가리키고 있었다. 신호가 울리자 자신의 몸보다 두배 이상 긴 장대를 들고 다니는 이들 사이로 한 선수가 빠르게 가속을 붙인다. 플랜팅 박스에 장대를 깊숙이 그리고 정확히 꽂아 놓은 이 선수는 장대와 몸의 반동을 최대한 이용하며 성공적으로 바를 넘었다. 임은지가 이 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 종목 4연패를 달성한 순간이자 국내 무대는 너무 좁다는 것을 알리는 이 결승 퍼포먼스는 그녀의 다음 목표를 위한 찬란하고 역사적인 발걸음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한국 여자 장대높이뛰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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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지=여자 장대높이뛰기?

앞서 설명했듯 제 97회 충남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임은지의 기록은 2위 최예은과 40cm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기록이었다. 이 정도 기록 차이라면 ‘어차피 우승은 임은지’ 정도의 흘러간 유행어도 써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사코 고개를 흔든다. 국내 최강자라는 타이틀에 잘 어울리는 커리어와 레코드를 보유하고 있는 그녀지만 ‘이번 대회는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던 대회’였다고 전했다.

“개인적으로 영원한 승자 혹은 영원한 일인자는 없다고 생각해요. 준비 기간이 길지 않아서 저 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고 과정에 대해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4연패를 하게 돼서 기분은 정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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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감과 함께 종목에 대한 아쉬움을 얘기했다. 실제로 이번 체전에 출전한 여자 장대높이뛰기 일반부 선수는 5명. 이마저도 기업팀이 아닌 지차체팀 소속이다. ‘종목 4연패’라는 타이틀과 ‘국내에 적수가 없다’는 소개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이 문구를 들었을 때 느껴지는 무게감과 임팩트는 타 종목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장대높이뛰기라는 종목 자체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선수층이 많이 얇기 때문에 그런 소개를 들으면 기쁘면서도 부연 설명이 필요하게 되더라고요. 장대높이뛰기 종목 자체가 여자선수로서 버려야 할 부분들이 많아요. 또한 다른 종목들보다 다양한 훈련을 소화해야 하는데 그렇게 훈련할 수 있는 장소도 부족한 환경적인 어려움도 있고요.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선수들 사이에서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종목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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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선수들은 우승 소감을 물으면 ‘기쁘다, 좋다, 영광이다’ 3가지 표현을 돌려쓰기 마련이다. 당연하다. 우승을 했으면 당연히 기쁘고 좋으며 영광스러우니까. 하지만 이 종목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선수로서 임은지가 덧붙인 아쉬움은 소감 보다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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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 전향과 기록적 성장

기사를 위해 임은지의 수상내역을 정리하다 재미있는 기록을 발견했다. 임은지가 처음으로 전국체전 장대높이뛰기 종목에 참가한 것은 연제구청 소속이던 2008년 89회 전국체육대회부터다. 그런데 이 밑으로 ‘7종 경기’와 ‘세단뛰기’ 참가한 여고생 임은지의 기록이 있다. 그냥 참가만 한 수준이 아니다. 2년에 걸친 대회 기록에서 7종경기 금메달과 은메달 하나씩. 그리고 세단뛰기에서는 2연패에 성공했다. 두 종목에서 동나이대 국내 최고였음을 입증하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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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전국체전이 끝나고 고등학교 감독님께서 권유를 해주셔서 장대높이뛰기로 전향하게 되었어요. 한 종목을 특출나게 잘하지 못해서 감독님이 권유를 해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고등부 세단뛰기와 7종경기를 제패한 임은지의 겸손한 전향 계기(?)보다 더 놀라웠던 건 장대높이뛰기로 전향한 이후 그녀의 성장 속도다. 2008년 2월 처음으로 장대를 잡은 그녀는 그해 3월 3m를 돌파했고 10월에 열린 ‘제 1회 한국그랑프리육상대회’에서 4m 10cm를 넘고 우승하며 당시 한국 기록(4m 16cm) 보유자였던 최윤희마저 제쳐버렸다. 채 1년도 안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성장의 가속은 이때부터 더 붙는다. 이듬해 3월 4m 24cm를 넘어 한국신기록을 경신했고 한달 뒤 4m 35cm를 기록해 자신의 한국신기록을 더 높이는 데 성공했다. 당시 임은지의 4m 35cm란 기록은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 B기준 기록이었다. 임은지가 세계 육상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 종목에 한국인 최초로 출전을 허락받은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전향을 한 뒤에 훈련이 너무 재미있게 느껴지더라고요. 힘든 훈련이 재미있게 느껴지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제가 육상 종목에서 안 해본 종목이 거의 없거든요. 그것들을 장대높이뛰기에 접목 시킬 수 있었던 것도 성공적으로 전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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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지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임은지가 또 하나의 최초를 만들어 냈던 대회다. 한국 육상이 역대 아시안게임 여자 장대 높이뛰기에서 메달을 따낸 건 2014년 임은지의 동메달이 최초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3년간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고 대회를 준비하며 입은 부상들을 안고 뛰었던 임은지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 다시 한번 밝은 빛을 본 시간이었다.

“4m 15cm를 넘고…부모님. 부모님이 제일 먼저 생각났어요. 특히 아버지가 저 때문에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보답을 해드리고 싶었죠. 경기 내용면에서 있어서 실수를 하지 않은 점은 다행이었지만 메달 색이 조금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자국에서 열린 대회기 때문에 보러 오신 우리나라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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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지는 한국 최초의 메달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기대에 더 크게 부응하지 못한 점을 아쉽다고 얘기했다. 물론 국가대표로서의 임은지는 국민들의 성원에 순수하게 보답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종목을 대표하는 선수로서의 임은지는 자신의 성적이 곧 국민적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분을 간과해선 안된다. 그녀가 앞으로 펼쳐질 해외대회에서 잘하고 싶은 욕심을 숨기지 않는 데에도 이런 부분이 어느정도는 작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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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팬들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하는 것보다 저희가 잘해서 자연스럽게 팬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게 더 효과적이고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요. 장대 높이뛰기 종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 육상 전체적으로요. 때문에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해외무대에서 좋은 경기력으로 국민들께 좋은 인상을 남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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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꿈

“큰 무대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드리는 게 운동선수로서 저의 마지막 꿈인 것 같아요”

임은지가 얘기하는 큰 무대인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과 2020 도쿄 올림픽까지 남은 시간이 길지는 않다. 아마 임은지는 이 두 대회를 준비하며 세찬 폭풍우와 마주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호적수를 만날 수도. 부상과 당할 수도 있다. 아니면 어느 순간 벽에 막혀 늘지 않는 기록 앞에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장대 높이뛰기 선수로 살아온 임은지가 충분히 이겨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 일들이다. 그녀가 큰 무대로 향하는 그 시간 동안 멋진 항해와 풍경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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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데일리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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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LETE 해외토픽] 호나우지뉴, 패럴림픽 주제가 부른다!

브라질 최고의 테크니션 축구선수였던 호나우지뉴가 패럴림픽의 공식 주제가를 부르는 가수가 되었다.

호나우지뉴는 브라질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의 공식 홍보대사이다. 그는 홍보대사로서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고 패럴림픽의 주제가를 부르는 가수로도 선정될 정도로 아직까지는 브라질에서의 그의 위치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패럴림픽 공식 주제가는 브라질의 가수인 쟈마와 함께 부른다.

현재 호나우지뉴는 소속팀이 없는 상황이다. 과거에 전세계 축구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외계인 호나우지뉴지만 세월 앞에서는 그도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가 그라운드에서 모습을 보인다는 것 만으로도 많은 축구팬들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한다. 어서 빨리 호나우지뉴가 축구화를 다시 신고 경기에 나서길 원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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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AP News

북한

[해외토픽]북한 올림픽 선수단, 초라한 환영받으며 복귀 

북한 올림픽 대표팀이 27일(한국 시간) 적은 수의 인민들과 가족들의 환영을 받으며 북한으로 돌아왔다고 28일 조선중앙방송이 보도했다.

평양국제비행장에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부위원장인 로두철과 내각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과 북한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정수 체육성 제1 부상 등이 대표단을 맞았다. 그러나 지난 올림픽과 달리 자동차 퍼레이드와 관중들의 길거리 환영인사는 없었다.

북한은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역도와 체조에서 금메달 2개, 역도에서 은메달 2개 그리고 사격과 탁구에서 동메달 2개를 획득했다. 지난 런던 올림픽보다 메달 수는 많았지만 금메달 수는 줄어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냈다.

체조 금메달리스트 리세광은 “나는 우리 군과 인민들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 경기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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