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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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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이 쓰는 ‘2017운수 좋은 날’

서진솔 | 사진 아디다스 제공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 속 가난한 인력거꾼 김첨지의 독백이다. 어느 날 찾아온 뜻밖의 행운에 최고의 하루를 보낸 그에게 하루의 끝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 최악이 되었다. 인생은 늘 그렇듯 행복을 주목하고 있으면 다른 곳에선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 모순적인 장면으로 가득한 걸까? 독일에서 7번째 시즌을 보낸 구자철의 이번 시즌은 마치 김첨지의 운수 좋은 날과 같았다.

#운수 좋은 시즌

구자철은 2015-2016시즌 아우크스부르크 소속으로 27경기에 출전해 8골 1도움을 기록했다. 폭넓은 활동량과 안정적인 플레이를 앞세워 아우크스부르크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기 때문에 구자철이 보여줄 다음이 더 기대됐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시즌 시작 전 이탈리아 쥐트티롤과의 프리시즌 친선 경기에서 멀티골을 뽑아냈다. 이어서 아우크스부르크의 2016-2017시즌 첫 공식 경기인 DFB 포칼 컵 1라운드 경기에서 첫 골을 터트리며 쾌조의 출발을 알렸다. 말 그대로 운수 좋은 시즌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어려움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숨어 있었다. 지난해 11월 종아리 부상을 당해 3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올해 2월 5일 베르더 브레멘전에서는 1골 1도움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지만 발목 부상으로 또 전력에서 이탈했다.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어 보였지만 2달 후 결국 다시금 무릎 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고 말았다. 팀을 강등에서 구해내고 핵심 선수로 활약한 것에 비해 23경기(교체 1회)에 출전, 2골 3도움의 성적은 구자철이라는 선수에겐 아쉬운 성적이었다.

“이번 시즌은 여러 가지로 굉장히 아쉬웠어요. 공격포인트를 많이 올리지 못해 아쉬웠고, 부상 같은 경우에는 이제는 누구를 원망하고 싶지도 않아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김첨지의 끝이 아내의 얼굴에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허망함에 쏟아낸 푸념이었다면, 구자철의 운수 좋은 시즌 끝은 아쉬움을 토로하는 허망함과 좌절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다짐이었다. 구자철은 4월 21일 쾰른전에서 부상당한 무릎인대의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귀국해 재활에 몰두하고 있다.

“천천히 재활하고 있습니다. 현재 회복 상태는 70~80% 정도예요. 근력이 많이 약해졌기 때문에 근력을 채울 수 있는 훈련에 집중하고, 조깅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러닝을 시작하고 그다음에는 공을 갖고 할 수 있는 훈련을 계획하고 있어요. 휴가 기간에 쉬는 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재활에 신경 쓰면서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가대표 구자철

이번 시즌은 아우크스부르크 소속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구자철로서도 아쉬운 한 해가 되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노리고 있다. 4승 1무 2패 승점 13점으로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승점 1점 차로 우즈베키스탄에 추격당하고 있다. 월드컵 본선행을 두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한국 국가대표팀에 구자철은 대체불가에 가까운 중요한 선수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러시아 월드컵 진출의 분수령이 될 카타르 전에서 국가의 부름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슈틸리케 감독님이 독일로 찾아오셔서 오랫동안 대표팀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함께 문제점을 논의하고 소집에 관해서도 소통을 했기 때문에 이번 소집을 기대했는데 그 와중에 부상을 입었죠. 대표팀에 합류할 수 없다고 스스로 받아들였을 때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대표팀 제외를 이야기하는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월드컵 진출 불확실이라는 대표팀의 현재 상황 앞에서는 달랐다. 입에서 ‘위기’나 ‘걱정’과 같이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한 단어들이 나올 법도 했지만 대표팀을 이야기하는 구자철의 표정과 목소리는 의외로 밝고 힘이 들어가 있었다.

“대표팀의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좋은 선수들과 고참 선수들이 대표팀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대표팀의 월드컵 진출에 위기설이 있지만, 저희 대표팀이 가지고 있는 정신력은 남다릅니다. 부족하고 무너질 수 있는 순간에도 끝내 버텨내는 그 정신력이 저희 대표팀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고비를 넘기기 위해 힘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시

축구의 얼굴은 다양하다. 잔디 위에서 벌어지는 격투기인 동시에 바둑이기도 하고 하모니가 필요한 오케스트라이기도 하다. 선수들 사이 거친 육탄전이 벌어지는 동시에 그 안에는 치열한 두뇌 싸움이 숨겨져 있기도 하고, 11명이 골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선율을 맞춰가며 움직이기도 한다. 여기에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가 더 해지면 축구장은 복잡한 비일상의 공간으로 변한다.

비일상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다. 세계적인 명성의 스트라이커도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그런 복잡함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구자철은 이적, 임대, 부상이란 경험을 거듭하며 살아남았고 나름의 준비하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구자철이 2017-2018 시즌 다시 초록색 비일상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 펼칠 정말 운수 좋은 시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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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 윤성빈, 선구자를 넘어 세계 최고를 향한 폭풍 질주

Director Jeong Seong Hoon   Editor Choo Eun Cheol

Photographer Park Min Ji   Designer Lee Min Seo   Location DoubleH MultiGym

각각의 고유색을 가진 운동들을 한묶음으로 종합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장소와 때,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 목적과 활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 근간은 폭발력의 원천인 Power, 민첩함과 순발력으로 대표되는 Speed, 신체의 가동성을 이끄는 Mobility로 크게 정의 내릴 수 있다. 애슬릿미디어는 각기 다른 포커스에 맞춘 ‘나를 넘어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다 효과적인 Power-Speed-Mobility 향상의 운동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매달 당신을 찾아갈 이 이야기의 말미에는 반드시 당신도 ‘나 자신을 넘어섰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속도와 공포는 서로 비례하는 사이이다. 자동차에 탑승하고 있을 때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빠른 속도로 달릴수록 크게 공포감을 느낀다. 허나 애석하게도 이러한 공포를 극복하는 종목이 바로 스켈레톤이다. 스켈레톤은 1,200미터가 넘는 빙판 트랙을 엎드린 자세에서 썰매를 타고 질주하는 동계스포츠로 평균 시속이 약 120km/h에 달할 정도로 스릴이 넘치는 종목이다. 이에 더해 스켈레톤은 별도의 제어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그 공포는 썰매를 타는 선수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대한민국은 2018년 강원도 평창군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선수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지원했다. 그 결과 비교적 생소했던 동계스포츠 종목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스타들도 하나둘씩 배출됐다. 스켈레톤 역시 국내에선 알 만한 사람들만 알고있던 종목이었다. 대한민국 스켈레톤 국가대표인 윤성빈이 나오기 전까진 말이다. 윤성빈은 연일 스켈레톤 관련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세계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한평생 스켈레톤에 매진했던 엘리트 선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윤성빈은 체육대학교를 준비하는 입시생이었으니 말이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저희 학교 체육선생님으로 계셨던 선생님이 스켈레톤 종목과 관련된 일(서울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이사)을 하고 계셨어요. 그 선생님께서 저를 주의 깊게 보셨었고 저에게 스켈레톤을 추천 해주셨어요. 그렇게 스켈레톤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성장세는 비약적으로 빨랐다. 윤성빈은 운동을 시작한지 3개월 만에 대한민국 스켈레톤 국가대표가 되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스켈레톤은 불모지였다. 그리고 자신의 첫 번째 올림픽이었던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종목에서 16위를 차지, 대한민국 썰매 종목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15-2016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7차 대회에서 그는 대한민국 스켈레톤 선수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2016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세계랭킹 2위로 지난 시즌을 마감했다. 바야흐로 세계적인 스켈레톤 선수가 나타난 것이다.

“아무래도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이 제 성격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저는 좀 단순한 성격이어서 여러 잡생각이 많이 없는 편인데 스켈레톤은 멘탈이 정말 중요한 종목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경주를 할 때 시너지가 좋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오늘날 윤성빈의 위상은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높아진 위상만큼 평창에서 윤성빈에게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상당히 크다. 그렇기에 올시즌 마지막 스켈레톤 대회였던 IBSF 월드컵 8차대회는 윤성빈에게 특히 더 아쉬웠다. IBSF 월드컵 8차대회는 내년에 있을 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경기장으로 사용될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에서 열린 대회로 쉽게 말해 올림픽 리허설 무대였다. 이 대회에 출전한 윤성빈은 시계의 눈금보다 짧은 0.01초에 발목을 잡혔다. 윤성빈과 함께 8차대회에서 1등을 경쟁했던 스켈레톤의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가 합계 1분 41초 51로 금메달을 획득했고 윤성빈은 이에 0.01초가 모자란 1분 41초 52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1초의 1/100 밖에 되지 않는 눈 깜짝할 사이에 1등과 2등이 나뉜 것이다. 

“저의 선수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있다면 좋은 쪽으로는 처음으로 1위를 했었을 때였고 아쉬웠었던 경주는 지난 3월 평창에서 열렸던 IBSF 월드컵 8차대회예요. 0.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쳐서 많이 아쉽기도 했지만 어찌됐든 제가 준비했던 경주의 결과이기에 받아들여야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올림픽이기 때문에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일단 대회가 끝나고 제가 어떤 것이 부족하고 또 어떻게 하면 좋은 성적을 내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았기 때문에 여름 훈련을 통해서 내년에는 좋은 성적으로 보답을 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록을 다투는 스포츠가 그렇듯 스켈레톤 역시 가장 필요한 요소는 단연 스피드이다. 1/1000초에 희비가 교차될 수 있는 종목이 스켈레톤이다. 윤성빈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경험까지 겪어봤다. 그는 스켈레톤에서 필요한 스피드를 키우는 자신 만의 운동법을 소개해주었다.

“스타트는 스켈레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는 것이 중요한데 저는 빠른 스타트를 끊기 위해서 하체 운동을 가장 많이 하고 있어요. 첫 번째로는 제자리 피치(무릎 높여 제자리 달리기)입니다. 방법은 간단한데요. 제자리에서 양발과 팔을 크게 흔들어주고 교차시키면서 뛰면 되는데 여기서 무릎은 골반 높이까지 올려줍니다. 이 동작을 20회에서 30회 정도 3~5세트를 하고 있습니다. 스피드가 늘어나는데 있어서 정말 큰 도움이 되는 운동입니다.”

스피드를 높이기 위한 윤성빈의 선택은 제자리 피치라는 맨몸운동이었다. 맨몸운동은 별다른 운동기구가 불필요하고 외적인 요인에 상관없이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운동이다. 필자가 윤성빈을 처음 봤을 때 그의 탄탄한 몸에 압도를 당했는데 특히 당장이라도 트랙을 질주할 것 같은 허벅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윤성빈이 하체의 힘을 기르는 이유가 바로 스타트에서 빠르게 달려가기 위함이었다.

“다음으로 소개해 드릴 운동은 제자리 점프(앉았다 일어나며 점프하기)입니다. 제자리 점프 같은 경우에는 무릎을 충분히 구부려서 발로 바닥을 민다는 생각으로 쭉 뛰어오르면 되는 운동입니다. 이 운동을 하게 되면 허벅지에 정말 큰 부화가 오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으시다면 아마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제자리 점프는 10~15회씩 3~5세트를 반복하면서 훈련하고 있습니다. 여름에 같은 경우는 저희가 할 수 있는 훈련이 한정적이에요. 요즘은 이렇게 스타트를 중점으로 하는 훈련들과 육상, 웨이트 위주의 훈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윤성빈의 가장 큰 경쟁자는 누구일까? 두말할 것 없이 두쿠르스이다. 2009-2010시즌부터 쭉 세계랭킹 1위를 고수한 그는 현재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선수이다. 두쿠르스는 명실상부 스켈레톤 1인자이지만 아직 그에겐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타이틀이 없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정상의 자리에 도전을 했었으나 모두 홈 트랙 선수들(2010년 캐나다의 존 몽고메리, 2014년 러사이의 알렉산드르 트레티야코프)에게 금메달을 내주면서 2회 연속 은메달에 그쳤다. 징크스 아닌 징크스라고 하더라도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윤성빈에게 금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두쿠르스 선수가 올림픽에서 2번이나 금메달을 놓쳐서 이 점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을까 생각을 가지고 있긴 해요. 하지만 그런 외적인 요인들 보다는 저는 그냥 제가 노력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와 경쟁할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모두 세계적인 선수들이고 게다가 그 선수들은 저보다 경력 면에서도 앞서고 있고 무엇보다 경험이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대처하려면 빠른 스타트 라든지 주행하는 기술을 좀더 보완해야 될 것 같아요.”

윤성빈은 모든 국민들의 염원을 받는 국가대표 선수지만 그의 나이는 아직 20대 중반이다. 보통 이 나이대가 되면 하고싶을 것도 많을 텐데 윤성빈은 시종일관 운동에만 관심이 있었다.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찾고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하기 바빴다.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한 것은 이런 끊임없는 노력에서 비롯됐다.

“사실 제가 운동을 하다 보면 취미 생활을 가질 시간이 많이 없어요. 그래도 여유가 있다면 주로 농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평소에도 농구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가 제 또래들 보다 여유는 많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남들보다 좀더 목표를 빨리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점인 것 같아요.” 

2018년 2월 9일. 겨울스포츠 최대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이 강원도 평창에서 개막한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2002년 대한민국/일본 FIFA 월드컵,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권대회 이후 국내에서 열리는 스포츠 빅 이벤트이다. 자국에서 열리는 만큼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도 어느 때보다 크다. 윤성빈 역시 포커스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스켈레톤 선수 최초의 금메달에 맞춰져 있다.

“스켈레톤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떤 종목인지 전혀 몰랐었던 분들이 많았던 종목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알아주시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주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저에게 향한 관심을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결과로 꼭 보답해드리고 싶어요. 평창에 오셔서 많이 응원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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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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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규의 위대한 선방이 그만의 운동법에서 나온다던데?

Director Jeong Seong Hoon Editor   Kim Ji Won

Photographer Lee Yong Han, Park Min Ji   Designer Lee Min Seo

각각의 고유색을 가진 운동들을 한묶음으로 종합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장소와 때,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 목적과 활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 근간은 폭발력의 원천인 Power, 민첩함과 순발력으로 대표되는 Speed, 신체의 가동성을 이끄는 Mobility로 크게 정의 내릴 수 있다. 애슬릿미디어는 각기 다른 포커스에 맞춘 ‘나를 넘어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다 효과적인 Power-Speed-Mobility 향상의 운동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매달 당신을 찾아갈 이 이야기의 말미에는 반드시 당신도 ‘나 자신을 넘어섰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골키퍼는 축구 포지션 중 유일하게 손의 사용을 허락 받은 자리다. 때문에 어떤 포지션보다 특별하지만 때로는 다른 포지션에서 느낄 수 없는 고독함과 경기 내내 싸워야 한다. 경기 중 많은 기회를 놓친 공격수가 단 한 골을 득점해도 찬사를 받는 반면 단 한 번의 실책에도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골키퍼의 입장은 그 누구도 대신 설명해 줄 수 없다. 그것은 축구선수로서 최고의 영광이라는 국가대표 골키퍼 역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김승규는 오늘도 그 외로움과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한국 축구의 최후방을 지키는 수문장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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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닭의 해, 2017년은 온 국민의 염원인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 여부가 가려지기에 한국 축구를 대표 하는 선수들이 무게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끼는 해일 수밖에 없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 이 마찬가지겠으나 자신의 플레이 한 번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골키퍼들의 책임감과는 비교할 수 없을 터. 그러나 그들은 월드컵 진출에 한몫을 보태기 위해 나아가 월드컵이란 큰 무대의 땅을 1초라도 밟기 위해 모든 역량을 걸고 다툰다. 김승규 또한 선배 정성룡, 김진현과 확고한 주전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경쟁은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경쟁을 통해서 발전해왔고 아직도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충분히 자신감도 있고요. 제 장점이라고 평가 받는 공중볼 싸움이나 슈팅 방어력을 어필한다면 어떤 경쟁이든 이 겨낼 수 있어요”

김승규가 알고 있는 세간의 평가대로 그는 명장면을 다량으로 뿜어낼 수 있는 골키퍼다. 동물적인 순발력과 극도 의 유연함은 공격수의 득점 장면보다 더 화려한 김승규만의 ‘선방쇼’를 가능케한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종합돼 한국 최고의 골키퍼들이 모이는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줬다. 화려함을 넘어서 찬란해보이기까지 하는 김승규의 방어력, 이 힘의 원천은 어디서부터일까.

“모든 건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서부터 시작돼요. 순발력을 이용한 펀칭이나 유연함을 요하는 어려운 자세에서 의 방어도 결국 다 준비가 되어있어야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평소 트레이닝이나 경기 전, 낮은 자세를 유지 하는 힘을 갖게 해주는 풀스쿼트 혹은 몸 전체적인 운동능력을 증진시키는 줄넘기 등으로 신체의 가동성 (Mobility)을 충분히 높여 놓는 편입니다”

의외에 답변이었다. 민첩함과 순발력을 기반으로 한 방어력으로 찬사를 받는 김승규에게 있어 이 모든 걸 가능케 했던 힘의 원천은 바로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가동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가동성을 기르는 운동을 가볍게 여겨선 안된다고 말했다.

“설명을 드리자면 우선 풀스쿼트는 일반적인 스쿼트보다 더 깊이 앉아서 무게를 컨트롤하는 운동입니다. 골키퍼 같은 경우에는 안정적인 방어를 위해 경기 내내 낮은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런 자세에서 순간적인 힘을 내는데 아주 효과적인 운동이에요. 평소에도 이 운동을 통해 낮은 자세를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감각을 기르죠. 그리고 줄넘기같은 경우는 어떤 종목이든 간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점프력이나 균형감각 등 운동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골고루 향상시켜주거든요. 저도 휴가기간이 끝나고 다시 훈련을 시작할 때 이 줄넘기로 몸의 컨디션을 빠르게 끌어올리곤 합니다”

이렇듯 기초에 중점을 둔 ‘준비자세’는 지금의 김승규를 있게 만든 큰 자산이다. 그가 이렇게 기본과 준비를 강조 하는 데에는 그의 선배이자 롤모델, ‘리그 700경기 출장의 신화’ 김병지의 영향도 다소 있는 듯 보였다.

“선배님의 ‘700경기 출전’은 정말 위대한 기록이죠. 그 기록을 위해서 선배님이 얼마나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셨을 지 상상조차 되지 않아요. 전 이것도 선배님의 자기관리 역시 ‘준비’라는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선배 님이 영광스러운 길을 터주셨으니 저도 끝까지 준비 잘해서 그 길을 따라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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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김승규는 김병지가 터놓은 길을 초입부터 따라가고 있다. 1992년 김병지가 그랬듯, 2006년 김승규도 울산 현대에 입단하며 프로선수로 입문하게 된다. 김승규라는 이름이 축구팬들의 뇌리에 박힌 건 데뷔전을 치른 2008 년부터다. 울산 현대 소속으로 K리그 플레이오프라는 큰 무대에서 데뷔전을 가진 김승규는 전광석화 같은 순발력으로 팀의 승부차기 승리를 이끌어 큰 주목을 받았다. 물론 당시 최고의 위상을 자랑한 주전 골키퍼 김영광의 자리까지 탐낼 순 없었으나 이후에도 결정적인 PK 혹은 승부차기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를 꾸준히 올려 나가며 성장했다.

“오랫동안 (김)영광이 형의 뒷모습을 보고 자랐어요. 당시 한국 최고의 골키퍼였으니까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 큼 높은 위치에 있는 선배라고 생각했죠. 이적도 고려해봤었는데 오히려 영광이형 옆에서 배운 게 지금 생각해보 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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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3년, 김영광의 부상으로 인한 공백을 완벽히 메우며 완벽한 주전으로 올라선 김승규는 그해 K리그 베 스트 일레븐에 선정될 만큼 큰 활약을 펼쳤다. 골키퍼가 보여줄 수 있는 안정감과 화려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골키퍼라는 게 당시 전문가들의 평가다.

잠재력이 있고, 즉시 전력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인 이런 선수를 마다할 대표팀은 없다. 유소년 시절부터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며 담금질을 게을리하지 않은 김승규는 2013년 8월 페루와의 경기에서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 고 경기장을 누볐다. 발군의 반사신경을 기반으로 한 슈퍼세이브로 국가대표 레벨에서도 활약할 수 있다는 사실 을 증명한 김승규는 정성룡의 백업 자원으로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하기도 했다. 당시 팬들 사이에서 ‘김승 규를 주전으로 써야 한다’는 논쟁이 있을 만큼 그가 월드컵 전부터 보여준 활약상은 대단했는데 아쉽게도 월드컵 본선에서는 1경기(벨기에戰) 출전에 그치고 말았다.

“저한테는 생애 첫 월드컵 경기였기 때문에 당연히 아쉽죠. 사실상 조별예선 결과가 나온 상황이긴 했지만 선수단 모두가 이기고 싶어서 죽기 살기로 뛰었거든요. 저 또한 마지막까지 응원해주시는 국민 여러분께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고요”

김승규가 이 경기에서 보여준 활약은 대단했다. 비록 상대의 위협적인 슈팅을 방어하느라 쳐낸 공이 상대 얀 베르통헨 앞으로 떨어져 실점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유효슈팅 7개를 방어해내는 선방쇼를 펼쳤다. 해외 매체들도 ‘빅유닛’, ‘굿세이브’ 등의 표현으로 한국의 차세대 수문장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 정도면 잡음으로 들릴만한 여러 외부적 요인에 흔들릴 법 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본인의 경기’에 집중해 좋은 모습을 보여준 김승규가 대견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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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입단 계약을 맺은 2006년을 그의 프로선수로서의 출발선으로 보자면 지난해는 딱 10년이 되는 해였다. 10 년동안 김승규는 누구 못지않은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K리그에서 가장 사랑받는 골키퍼 중 한 명이었고, 소속팀에 서는 대체 불가 핵심 자원이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따낸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어 한국에 남는다면 다른 선수보다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10년차’에 선택한 그의 J리그 진출은 다 소 의외였다. 오래도록 쌓아 올린 안정적 커리어를 포기하고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택한 것이다. 여기에는 김승규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방심을 경계하는 자세’가 깔려있었다.

“나는 금메달로 인해 2년이란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절대 방심하면 안된다. 방심은 곧 독이다. 긴장을 풀지 않고 살겠다”

-2014 인천 AG 결승전 승리 직후-

익숙해져있는 울산의 클럽하우스와 훈련장은 내 집 같은 평온함을 선물했지만 오히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정체 되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인해 병역 혜택이 확정된 직후 그의 인터뷰에서 엿볼 수 있듯 그는 방심과 정체를 독이라 생각하는 선수다. 그래서 극적인 변화를 필요로 했고 자연스럽게 해외 진출이란 단어가 따라왔다. 그렇게 J리그와 빗셀 고베는 프로 10년차를 맞이한 김승규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나아가기 위한 답이 됐다.

안정적인 생활을 버리고 정글로 뛰어든 김승규의 지난 한 해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전반기 17경 기 25실점으로 적응기를 가진 김승규는 후반기에 14경기에서 15골만을 허용하며 J리그 주간 베스트일레븐에도 선정되는 등 차분히 연착륙해나가고 있다. 그가 안정적으로 변하자 빗셀 고베의 성적 또한 전반기 12위에서 후반 기 2위까지 반등했다. 최고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적한 첫해임을 감안하면 비교적 준수한 성적을 거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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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빗셀 고베도 팀 역사상 최고 승점을 기록했고 저도 의사소통면이라든지 경기력 부분에서 적응을 빨리 할 수 있어 다행스러웠던 시즌이에요. 올해는 아마 여러 부분에서 작년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 아서 저 또한 벌써부터 많이 기대가 되네요”

올해에 대한 기대감은 김승규뿐만 아니라 그를 응원하는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이제 매 경기 가 살얼음판처럼 진행 될 월드컵 최종예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김승규는 또 다시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다.

“월드컵에 못나가는 끔찍한 상황을 상상해 본 적도 없어요. 아마 팬들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해요. 지금이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지만 결국 더 열심히 준비해서 모든 경기를 이기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네요. 반드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중요한 시기, 때문에 김승규의 2017년은 ‘준비’다. 어떻게 준비하느냐,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따라오기 마련이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내야만 하는 국가대표로서, 한 시즌 적응기간을 마친 용병으로서 뚜렷한 결과 물이 필요한 올해의 김승규는 호흡을 가다듬고 성공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뛰어 넘는 결과로 모 든 것을 증명할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나를 넘어서다.  I’M NEVER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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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LETE

ATHLETE’s Winter Story
Passion. Connected. #2 평창 소년이 꿨던 꿈, 스키 김현태의 열정

Director Jeong Seong Hoon   Editor Kim Ji Won   Photographer Lee Yong Han   Designer Lee Min Seo

인구 약 5만여 명의 소도시 평창을 향한 시선들이 각양각색의 기대감으로 차오르고 있다. 시선의 시작은 올림픽을 그리는 아득한 호기심이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물음표는 점점 구체화되 었고 이는 어느새 손에 잡힐 듯 목전에 다가온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국 스포츠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시간도 머지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수많은 시선들 중 가장 또렷하고 분명한 눈 빛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선수생활 중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경험할 수 있는 극소수 중 한 명, 나아가 역사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새기기 위한 그들의 행보는 음울할 정도로 고독하나 온전 히 아름답기 그지없다. 애슬릿미디어는 ‘Passion. Connected.’를 통해 가장 차가운 곳에서 가장 뜨 거운 순간을 맞이할 그들의 올림픽 열정을 독자들과 나누려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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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 Connected. : 한국 스키의 새로운 간판

추위, 눈, 크리스마스, 로맨틱, 성공적 등 겨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연관 검색어들이 많지만 그 중 단연 으뜸은 역시 스키 혹은 스키장이다. 소복이 쌓인 눈을 사뿐사뿐 밟고 들어가 깎아지듯 아찔하게 그려진 슬로프를 보고있노라면 사계 중 오직 겨울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을 한아름 받은 착각마저 들곤 한다. 이 정취를 느끼기 위해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스키장을 향해 차를 돌린다.

지금은 이렇게 대표적 계절 스포츠로 자리잡은 스키지만 그 유래는 수천년전 북유럽과 시베리아 와 같이 적설량이 많은 산악 지방에서 이동과 전쟁에 필요한 원시적 교통 수단을 요긴하게 할 목 적으로부터 기인했다. 현대에 들어와 보다 안전하게 그리고 보다 빠르게 스키를 탈 수 있는 장치 들이 제조되면서부터 오늘날과 같은 스포츠로서의 스키가 구체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데 한국도 1930년 원산 시외 신풍리 스키장에서 개최된 제 1회 전 조선 스키 선수권 대회와 1946년 조선 스키 연맹(대한스키협회 전신)창설을 시작으로 스키 역사에 발을 담그게 된다.

출발 신호탄이 울린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스키는 여가 시간을 활용해 ‘본 인이’ 즐기는 철저한 오락 스포츠다. “스키 타러 갈까?”라는 말은 입에 붙지만 “스키(경기) 보러 갈 까?”라는 문구가 낯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보는 스포츠로서 매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찰나 를 겨루는 스피드, 공중을 수놓는 화려한 기술 등 대중의 눈을 사로 잡기 위한 요소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답은 한가지. 국제대회 나아가 올림픽에서만이라도 대중들을 스키 경기 앞으로 이끌 수 있는 선수의 부족. 말 그대로 피겨의 김연아,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같은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가진 종목 간판이 없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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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허술한 시스템을 고려하지 않고 종목을 대표할 수 있을 만한 기형적 혹은 기적적 선수가 홀 연히 등장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하지만 때론 그 기적에 기대 전반적인 종목 인프라 향상의 방향을 잡길 원하는 것이 대부분 느끼는 솔직한 심정일 터. 때문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 국 스키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김현태에게만큼은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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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Connected. : 그 원동력에 대하여

알파인스키는 스피드 종목에 활강과 슈퍼대회전, 테크니컬 종목에 회전과 대회전으로 크게 나뉘 며 스피드와 테크니컬을 결합한 복합과 국가별 이벤트인 혼성 단체전 등으로 갈래를 뻗어 나간다. 종목을 막론하고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나 김현태는 스피드와 테크니컬을 가리지 않고 두각을 나타내며 한국 스키계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출전한 대회 10개 종목 전관왕을 차지하며 남다른 싹수를 보였던 김현태는 2008년 동계체전에서도 3관왕을 차지하며 화려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김현태에게도 시련 은 찾아왔다. 성인이 된 후에도 여러 대회에서 입상하며 정상급 선수로서의 성장을 멈추지 않았 던 그였지만 2011시즌은 사정이 약간 달랐다. 경기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고 성적은 성적대로 떨 어지는 슬럼프가 찾아오자 김현태는 망설임없이 입대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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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에게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의무잖아요. 저 같은 운동선수들은 때론 마음의 짐으로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당시 성적도 만족스럽지 않았던 차에 그 짐을 빨리 내려놓고 싶어서 무작 정 군대로 향했죠”

스키와 떨어져 지낸 군생활기간은 오히려 김현태에게는 ‘스키를 타고 싶다’는 갈망을 제공했다. 제대 후 그 갈망은 해소를 위한 적극적 행동을 동반해 김현태를 하루 온종일 맹훈련하게끔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2014년 국가대표에 다시 선발될 때까지 겪었던 슬럼프 기간 동안 그 는 정신적으로도 훌쩍 자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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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김현태는 테크니컬 종목을 전담으로 하는 기술계 선수다. 하지만 김현태의 국내대회 성적은 굳이 그를 특정 종목 특화선수로 결론지을 수 없음을 증명한다. 2015년 동계체전 4관왕, 2016년 동계체전 2관왕 등을 비롯 종목을 가리지 않고 여러 대회에서 무수히 많은 타이틀을 따냈다. 특히 지난 2월에는 강원도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열린 2016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 한국 선수 사상 최초로 스피드 종목인 슈퍼대회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당시 김현태는 완주를 한 42명 가 운데 42위로 골인하며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12명이 완주에 실패했고 그 안에 세 계랭킹 2~4위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김현태의 완주가 얼마나 의미있는 성과 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김현태의 생각은 약간 다른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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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쉽죠.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어요. 연습 때는 그렇게 (못)타지 않았거든요. 확실히 그 정도로 큰 규모 대회는 처음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올림픽 전까지 큰 시합을 많이 경험해봐야겠다’는 좋은 교훈을 얻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김현태가 월드컵 성적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않은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월드컵에서 김현 태와 함께 했던 그의 가족들 때문이다. 김현태의 가족은 잘 알려진 ‘스키패밀리’다. 선수 출신인 누나 김현지씨는 현재 스키를 지도하는 강사로 활동 중이고, 남동생 김현수는 국가대표팀 상비군 에 포함될 만큼 형 못지 않은 잠재성을 보유한 유망주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김준기씨 또한 유 명 스키모임 ‘실버드림’ 소속으로 국내에서 열리는 각종 스키대회 진행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아버지는 코스 심판으로, 누나는 경기운영인력으로 김현태와 함께 호흡했다. 때 문에 가족들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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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운동선수들은 가족들이 경기장을 찾으면 집중이 안된다고 하는 경우도 있던데 저는 완전 반대입니다. 가족이 보고 있으면 더 편하고 경기도 잘되거든요. 그래서 더욱 아쉬워요. 가족들이 보는 앞이라 더 잘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긴장감을 이기진 못했던 것 같네요”

그가 평창을 향해 정조준하고 있는 메달은 역시 주종목인 테크니컬 부분이다. 사실 한국은 그간 스피드 종목을 훈련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이 제대로 정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탓에 세계 레벨과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김현태를 비롯 정동현, 경성현 등 월드컵급 선수들이 포진된 테크 니컬 종목은 약간 사정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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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출발이 너무 늦은 탓에 스피드 종목은 세계 레벨을 당장 따라잡기에는 무리가 있지 만 테크니컬은 달라요. 연습 때 외국 선수들과 기록 차이가 거의 나지 않거든요. 시합 경험만 충 분히 쌓는다면 (올림픽 메달)가능성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김현태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스피드 종목에 대한 자신감이 붙어 활강과 회전을 합친 복합경기에서도 좋은 모습 나아가 메달까지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종목을 가리 지 않고 ‘기본적으로 스키를 잘 타는 선수’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올림픽을 1년 앞둔 시점 에서 밝힌 김현태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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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eongChang. Connected. : 평창 소년, 평창을 꿈꾸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여기에서 나왔어요. 저희 집은 이 근처고요”

동계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이후 평창은 한국 동계 스포츠 선수들에게 기회와 꿈이 공존하는 도시 가 되었지만 김현태는 그 감정의 농도가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더 짙다. 김현태가 나고 자란 곳, 유년 시절 막연히 스키 국가대표를 꿈꿨던 곳이 바로 이 평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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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을 실현시킬 시간이 목전으로 다가왔기에 그는 오늘도 분주하다. 2017년 스키 국가대표로 일찍이 선정되었기에 수많은 국제 무대와 이를 위한 훈련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김현태는 오히 려 더 빨리 큰 무대 경험치를 빨아들이고 싶은 모양이다.

“일단 2017년은 삿포로 동계아시안 게임이 있잖아요. 또 환태평양 대회, 유로파컵, 월드컵 등 올림픽을 앞두고 큰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대회들이 즐비해요. 많이 다녀보고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 될 텐데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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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기다림 끝에 다가온 올림픽에 출전하는 걸로 만족하는 것이 김현태의 진짜 꿈은 아니었을 것 이다. 자신의 가치를 확실한 경기력으로 증명하고 당당하게 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성적까지 거

둬 한국 스키의 새로운 별로 등극하는 것. 평창의 아들은 오늘도 이 오래된 꿈을 싣고 슬로프를 가른다.

“저한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올림픽인데 제 고향이 그 무대라는 게 감격스럽습니다. 남은 기간동안 열심히 훈련해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경기에 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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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키 종목 테스트이벤트(Hello PyeongChang)인 ‘2017 극동컵 회장배 국제 스키대회’가 다가올 1월 16일부터 양일간 용평 알파인 경기장에서 개최됩니다. 올림픽으로 가는 관문인 테스트이벤트(Hello PyeongChang)를 통해 김현태 선수가 좋은 모습을 보여 본 대회에서 자신의 열정을 펼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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