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군단’ 그 에이스들에 대하여

‘사자군단’ 그 에이스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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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LETE
‘사자군단’ 그 에이스들에 대하여

‘검은 돌풍의 원조’, ‘불굴의 사자’와 같이 멋드러진 별명이 잘 어울리는 그들이 15년만에 아프리카 대륙 최정상에 섰다. 카메룬은 6일(한국시간) 가봉 리브르빌에서 열린 2017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 이집트와의 경기에서 2-1로 역전승을 거두며 대회 최종 우승팀에 올랐다. 2002년 대회 이후 우승과 연을 맺지 못한 카메룬이 15년만에 본인들의 이름값을 해낸 것인데 이로써 카메룬은 통산 5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는 성과를 기록했다.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축구강국이었음에도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처참한 성적(각각 3전 전패 조별예선 탈락)으로 인해 뒷전으로 밀렸던 그들이 다시 한번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고 볼 수 있으리라. 앞서 말했듯 카메룬은 이번 대회를 포함해 총 다섯 차례 우승컵을 들었다. 최다 우승국인 이집트(7회)에 이어 해당 부분 2위에 오를 만큼 영광스러운 기록이다. 그리고 매번 그 찬란한 순간을 이끌었던 에이스들이 존재했다. 오늘은 시계를 되돌려 이 다섯 명의 ‘라이언킹’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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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테오필레 아베가
코트디부아르에서 열린 84년 대회는 8개국이 출전해 정상을 다퉜다. 당시 카메룬 대표팀은 현재까지도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로저 밀러와 두 차례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79, 82)로 선정된 명골키퍼 토마스 은코노도 포함되어 탄탄한 전력을 자랑했다. 특히 84년 대회가 치러지기 2년 전인 1982 스페인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최종 우승국 이탈리아와 접전 끝에 1-1 무승부를 만들어 내기도 했었기에 카메룬에 대한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관심은 지대했다.

여기에 더해 카메룬 축구가 배출해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인 테오필레 아베가의 존재감 또한 상당했다. 186cm에 달하는 신체조건과 경기 흐름을 빠르게 읽는 능력, 탁월한 패싱, 그리고 언제든 한방을 날릴 수 있는 득점력까지 두루 갖춘 84 대표팀 최고의 슈퍼스타 아베가는 대회 내내 자신의 별명(The Doctor)처럼 침착하고 지능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결국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아베가는 특히 결승전이었던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환상적인 골을 터뜨리며 이 대회가 자신의 것임을 아프리카 대륙에 선포했다. 결국 이 대회의 우승과 MVP를 동시 수상한 아베가는 그해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까지 수상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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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로저 밀러
‘불세출의 스타’ 로저 밀러가 이끈 80년대 카메룬 대표팀은 적수가 없었다. 1984년, 대회 첫 우승 이후 밀러는 그 다음 대회인 1986년 대회에서 이름값을 해내며 득점왕 올랐다. 물론 결승에서 이집트에게 패해 우승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대회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988년 대회에서 비록 밀러는 2골을 기록하는데 그쳤으나(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득점왕에 올랐다)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하며 결국 카메룬을 우승시켰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이후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검은 돌풍’의 원조격인 카메룬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이때의 주연도 당연히 밀러다. 루마니아전과 콜롬비아전에서 각각 2골씩을 뽑아낸 밀러는 팀을 8강까지 올려놓으며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렸다. 더욱 놀라운건 다음 스토리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 다음 대회인 1994년 미국월드컵에도 출전했는데 이때 그의 나이 만 42세 1개월이었다. 그냥 출전만 했냐고? 전혀 아니다. 그는 이 대회 러시아전에서도 득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 득점은 월드컵 최고령 득점 기록으로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42000′ 패트릭 음보마
카메룬의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을 책임진 선수가 로저 밀러였다면 90년대 이후 카메룬을 대표했던 건 패트릭 음보마다. 199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과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하며 메이저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음보마는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탁월한 골감각으로 카메룬을 넘어 아프리카 축구를 대표하는 골잡이로 일찍이 자리잡은 상태였다.

2000년 대회에서 그의 활약은 대단했는데 꼭 필요한 순간마다 결정적인 골을 기록하며 카메룬의 우승을 최선두에서 이끌었다. 그는 이후 열린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며 2000년 한 해를 본인의 해로 만들었고 이런 활약에 힘입어 그해 아프리카 최고의 선수상까지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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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리고베르 송
카메룬 역대 최고의 수비수 리고베르 송은 2000년 대회에 이어 카메룬이 2회 우승을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 카메룬 수비의 심장이자 팀의 핵심으로 뒷문을 든든히 책임졌고 결국 카메룬은 6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골도 허용하지 않은 채 무실점으로 대회를 끝마쳤다. 당연히 이 대회 MVP도 송의 차지였다.

1993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17년 간 대표 생활을 했던 카메룬 축구의 진정한 전설인 그는 작년 뇌동맥류로 쓰러져 생명이 위독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상태가 호전돼 언론과의 인터뷰에도 임하는 등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7’ 휴고 부르스
마치 아르바이트생을 뽑듯이 감독을 뽑는다? 거짓말 같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카메룬축구협회는 지난 2015년 SNS를 통해 감독 공개모집에 나섰다. 조건은 ‘인성이 좋고, 건강하며, 강인하고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라는 것이었다. 물론 ‘카메룬 거주’도 가능해야했다. 당연히 세계 축구팬들은 카메룬축구협회에게 비난의 화살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이 공고를 본 한 감독이 지원서를 내고 면접 일정을 잡았다. 그의 이름은 휴고 부르스. 벨기에 출신이며 자국과 그리스, 중동 프로팀을 이끈 경력이 있는 지도자였다. 빅네임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SNS에 뜬 공고를 보고 지원할 만큼 절실했던 부르스 감독은 카메룬 대표팀과 만나 우승이란 ‘마법’을 펼쳤다.

사실 이번 대회 카메룬의 선수층은 우승을 꿈꿀 수 없는 전력이었다. 유럽 명문클럽에서 뛰고 있는 주전선수들이 리그 일정을 핑계로 출전을 거부했기 때문인데 부르스 감독은 여기에 신예들을 전면기용하며 승부수를 뒀다. 대회 MVP를 차지한 크리스티안 바소고그, 대회 내내 신들린 선방을 펼친 수문장 파브리체 온도아 같은 선수들 역시 부르스 감독의 승부수들 이었다.

마법같은 선수기용과 지도력으로 전력이 열세인 팀으로 우승컵을 드는 데 성공한 부르스 감독 이외에 누구를 에이스로 꼽을 수 있겠는가.

/Editor Kim Ji Won